청년 세종과 한국정치
본 강연은 세종실록을 25년간 18번 이상 정독해 온 박현모 원장이, 자신의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세종의 리더십과 질문법, 그리고 청년 세종의 성장 과정이 오늘날 한국 사회와 정치, 특히 청년 문제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공유하는 자리였습니다. 강연자는 세종이 앵두와 전복을 좋아했다는 실록 기록을 사례로 들며 조선왕조실록의 디테일과 신뢰성을 강조하고, 자신을 “세종만을 주구장창 파온 연구자”로 소개했습니다. 이어 AI 시대에 모두가 “질문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며, 세종실록을 다시 읽다 보니 세종의 말 끝에는 항상 “어떠한가(하여)”라는 의문형이 붙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고, 연산군이 짧고 명령조 전교로 국정을 운영한 것과 대조적으로 세종은 끝없이 질문하고 경청하는 방식으로 나라를 이끌었다는 점을 부각했습니다. 강연의 구성은 ① 세종대왕 ABC, ② 세종의 질문법, ③ 청년 세종과 오늘의 시사점이라는 세 축으로 제시되었으며, 강연자는 자신이 웰다잉 프로그램에서 쓴 묘비명 “세종 같은 리더 1만 명을 양성한 박현모 여기 잠들다”를 소개하며, 교육·기업·정치 각 분야에 세종형 리더가 일정 규모만 있어도 한국 사회의 기상이 ‘활발발’해질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청년을 대상으로 한 세종 강의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세종의 ABC에서 A는 성과(achievement)로 설명되었습니다. 일본 학자들이 1418~1450년 세계 과학기술사를 정리한 사전에서 세종 시기 “K(코리아)” 표기가 21개, C(차이나) 4개, J(재팬) 0개로 나타나는 사례를 들어, 세종 시대가 단순히 ‘좋은 왕’의 시대가 아니라, 당시 기준으로 과학기술 노벨상급 성과의 47%를 차지한 시기였다는 점을 숫자로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그 21개 가운데 약 57%가 백성의 일상·언어·농업·먹고사는 문제와 직접 연결된 성과였다는 점을 들어, 세종의 R&D가 국위 과시나 무기보다 민생 개선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해석을 제시했습니다. 세종릉 비석의 ‘國’자를 예로 들며, 국가 운영은 영토의 테두리 안에서 밥그릇(민생)과 창(안보)을 책임지는 것이 기본이지만, 거기에 더해 두 글자의 ‘소통 정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상향 적응(윗사람 눈치 보며 트렌드 따라가기)은 탁월하지만 하향 소통(구성원의 생각을 듣고 끌어내기)은 극도로 부족하며, 세종과 이순신은 하향 소통을 가장 잘한 리더의 전형이라는 평가를 덧붙였습니다. B는 목표와 현실을 잇는 다리(bridge to goal)로, 세종은 문제를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보고 목표와 현재의 격차를 줄이는 과정 설계에 탁월했으며, 과거의 경험과 지혜를 현재로 잇고(고려사 편찬 등), 동시대 인재들을 서로 연결하며(집현전과 경연), 그 결과를 미래 세대로 이어 주는 “잇고 살리는(継述先志)” 일을 자신의 핵심 역할로 수행했다고 정리했습니다. 올해 세종 어록의 키워드 ‘연결하라’, 내년 어록으로 제시된 ‘살고 살리는 기쁨(生生之樂)’은 이런 연결과 살림의 리더십을 현대어로 재구성한 것이며, “나부터 살고 바로 서고, 나아가 타인을 살리는 기쁨을 누리는 리더”가 한국 사회에 절실하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C는 비교(compare)로, 세종을 정조, 강희제, 링컨 등 다른 시대의 리더와 나란히 놓고 볼 때 세종의 장점과 한계가 입체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을 강조했으며, 특히 세종의 부인 소헌왕후의 시선, 자식과 신하들의 시선을 함께 읽어내는 작업을 통해 “정치는 큐빅과 같으며, 한쪽 면만 보고 절대 진리인 양 주장하는 태도는 정치에 대한 무지”라는 문제의식을 제시했습니다.
세종의 질문법 부분에서 강연자는 유대인의 하브루타 학습법과 세종의 경연 회의를 병렬적으로 제시하며, 짝을 이루어 토론하고 질문·재질문을 통해 사안을 점점 복잡한 차원까지 확장해가는 것이 정치의 본질에 가까운 학습 방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세종의 회의법은 호상 논박과 다사리로 요약되었는데, 호상 논박은 서로 입장을 바꾸어 논쟁하며 자신의 전제와 상대의 관점을 동시에 점검하는 방식이고, 다사리는 회의에 참석한 사람 모두에게 발언 기회를 주어 겉말이 아니라 속말까지 꺼내도록 하는 방식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세종실록의 “내가 의논하라 함은 서로 논박하면서 각기 마음속에 쌓인 바를 진술하라는 뜻이다”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세종은 실제로 때로는 20여 명에게 한 마디씩 시켜 깃발을 든 병사, 북치는 사람까지 의견을 말하게 했고, 여기서 정승이 하지 못한 말을 평범한 하급자들이 하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강연자는 오늘날 대부분의 회의가 ‘보고와 공유’에 그치고 전환기적 의제에 대해 진짜 논쟁과 설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점을 비판하면서, 정치와 정당, 특히 개혁신당이야말로 세종식 경연 회의를 본격적으로 도입해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경로를 설계해야 할 시점이라고 제언했습니다. 세종의 질문법은 세 가지 C, 즉 전제를 의심하는 도전(challenge), 시대의 주된 불안에 정면으로 맞서는 대결(confront), 흩어진 자원과 사람을 연결해 해법을 만드는 연결(connect)로 정리되었습니다. 일식 예보 실패 시 세종이 관료를 벌하지 않고 “혹시 중국 역법이 우리나라와 맞지 않는 건 아닌가 하여”라고 되묻고, 결국 조선 자체 역법인 칠정산을 만들어낸 사례는 ‘당연한 전제’를 문제 삼는 질문의 전형으로 제시되었고, 갤브레이스의 문장을 통해 “위대한 지도자는 그 시대 국민이 갖고 있는 주된 불안을 정면으로 대결하는 용기를 가진다”는 점을 확인하며, 오늘 한국 사회에서 그 주된 불안은 부동산, 안보, 세금, 남북관계 등 여러 항목이 있지만 특히 청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질문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세종이 법령을 백성이 이해할 수 있게 알릴 필요성을 문제 삼으면서 방언 조사, 금속활자 서체, 의약서의 음운 자료 등 기존 지식과 기술을 모두 모아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낸 것을 ‘연결형 질문의 결정판’으로 설명했습니다. 이 세 가지 질문법은 기업 교육 현장에서 근무(당장 해야 할 일)와 선무(미리 해 놓으면 근무를 줄일 수 있는 일)를 구분하고, ‘급선무’를 “선무를 서둘러 하는 것”으로 다시 해석하는 데 활용되고 있으며, 강연자는 같은 프레임을 개혁연구원과 개혁신당의 2026년 과제 설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청년 세종 파트에서 강연자는 27세 세종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리며 오늘의 청년 현실과 연결했습니다. 세종 즉위 초 홍수와 기근이 이어져 백성이 흙을 파먹을 정도로 궁핍했던 시기, 명나라와 일본의 각종 요구가 동시에 들어오던 시점에 세종은 “이 모든 죄는 실로 내게 있다. 백성을 볼 낯이 없다”고 고백하면서 “나라에 도움이 되는 말이라면 조금도 숨기지 말고 올려 달라”고 요청했고, 그 결과 불과 사흘 만에 부처별로 시행 가능한 정책 60조목이 올라와 실제 정책으로 연결되었다는 사례를 통해, 위기 상황에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언어화하며, 동시에 집단지성을 끌어올려 정책으로 전환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세종은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성균관을 복지·학습 공간으로 재구성하고 집현전을 설치하는 등 장기 인재 양성에 집중했으며, 이를 근무가 아닌 선무로 보고 선제적으로 투자함으로써 이후 국가 운영의 근무를 줄여나가려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어린·청년 세종이 고자질을 잘 하고 잘난 체하고 운동을 싫어하며 비만했던 ‘문제아’였다는 기록, 그러나 태종의 엄한 훈련과 본인의 독서·수학·악기 훈련을 통해 ‘청년 세종’으로 거듭난 과정을 소개하며, “좋은 고전을 100번 읽으면 현인이 되고, 그 중 하나라도 실천하면 성인이 된다”는 세종의 기준을 인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강연자는 한국에는 현인(지식과 진단을 가진 전문가)은 넘쳐나지만 실행하는 성인(정책과 제도를 실제로 바꾸는 리더)은 부족하다며, 정치와 정당은 더 많은 진단보다 실행을 통한 성인형 리더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연자는 세종의 한계도 분명히 짚었습니다. 세종의 5대 실수 가운데 하나로 ‘전이(transfer) 실패’를 들며, 세종이 태종으로부터 훌륭하게 승계받았으나 문종 이후로 자신의 리더십과 시스템을 제도화하여 넘기는 데 실패했고, 그 결과 문종의 병약함과 수양대군과의 권력 경쟁이 제어되지 못한 채 계유정난으로 이어져 집현전 인재들이 대거 희생되고 세종의 업적 상당 부분이 이어지지 못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율곡 이이가 “세종 시대의 기틀은 훌륭하나 이후 승계에 실패했다”고 비판한 대목을 인용하며, 당시 이미 재상 총재제 등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구상했던 정도전의 아이디어를 참조해 문종과 수양을 제도적으로 함께 묶는 방식의 권력 구조를 설계했더라면 어땠을지에 대한 가정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강연자는 세종을 무조건 신격화하기보다는 무엇을 잘했고 어디에서 실패했는지, 특히 소통과 인재 양성에는 성공했지만 후계 구도 제도화에는 실패했다는 지점을 학습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끝으로 “요순의 지혜는 ‘먼저 해야 할 일을 미리 하는 데’ 있다, 오늘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근무와 선무는 무엇인가”라는 세종의 시험 문제를 오늘의 질문으로 다시 던지면서, 개혁연구원과 개혁신당이 한국 사회의 주된 불안인 청년 문제를 중심에 놓고 세종식 소통 정치와 질문 리더십을 어떻게 구현할지 함께 토론해달라는 열린 제안으로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